2017 PSAT 상황판단 2
2층 구조의 혁신적 군선 판옥선이 임진왜란 해전 승리의 원동력이 된 이야기
Photo · Arbbrief Editorial구체적일수록 틀리기 쉽다: 판옥선의 여섯 속성이 만드는 착시
표면만 보면 역사 지식을 묻는 문항이다. 판옥선의 개발 배경, 2층 갑판 구조, 임진왜란에서의 활약. 그러나 이 문항은 판옥선에 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어도 풀 수 있고, 사전 지식이 있어도 틀릴 수 있다. 지문 바깥의 정보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항이 실제로 시험하는 것은 하나의 대상에 밀집된 여러 속성을 읽어낸 뒤, 그 속성들이 선지에서 미세하게 뒤바뀌었을 때 그 교란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속성의 밀도라는 설계 조건
지문은 판옥선이라는 단일 대상에 대해 최소 여섯 가지 속성을 서술형 산문 안에 압축한다. 개발 시기(1555년), 개발 목적(왜구 제압), 갑판 구조(2층), 선체 길이(20~30m), 전술적 효과(승선전투전술 억제), 실전 투입 비율(거북선 3척 제외 전부), 승선인원의 시대별 변화(50여 명에서 125명으로). 이 속성들은 표나 목록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네 개의 문단에 걸쳐 서사적으로 풀어져 있으며, 각각의 속성은 인접한 다른 속성과 같은 문장, 같은 문단을 공유한다. "선체 길이가 20~30m 정도였던 판옥선은 … 선체도 높았기 때문에"라는 한 문장 안에 '길이'와 '높이'가 나란히 놓이고, "사수와 격군을 합친 숫자가 판옥선의 125명보다 많다"라는 문장에서는 '합산 인원'과 '격군 인원'이 구분 없이 흘러간다.
이 밀집과 인접이 문항 설계의 전제 조건이다. 속성이 서로 떨어져 있으면 뒤섞일 여지가 없고, 속성이 두세 개뿐이면 교란의 폭이 좁아진다. 출제자는 하나의 대상에 여섯 개 이상의 속성을 촘촘히 배치함으로써, 선지마다 서로 다른 속성 쌍을 교체하는 다채로운 오답을 설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놓았다.
오답은 각각 다른 지점을 교란한다
이 문항의 네 오답은 하나의 공통된 원리를 공유한다. 지문의 특정 속성을 인접한 다른 속성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꿔치기의 방식은 선지마다 다르며, 그 다양성이 수험생의 검증 자원을 분산시킨다.
가장 노골적인 교란은 ①에서 일어난다. "갑판 구조가 단층"이라는 서술은 지문의 핵심 정보인 2층 구조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선체의 높이가 20~30m"는 길이를 높이로 바꾼다. 하나의 선지 안에 두 군데가 동시에 틀려 있으므로 비교적 쉽게 배제할 수 있다. 이 선지의 기능은 오답 자체가 아니라, 수험생에게 '세부 속성을 대조해야 한다'는 과제를 인지시키는 관문 역할에 가깝다.
④ 역시 시기와 목적을 한꺼번에 교체한다. 판옥선의 개발 시점은 1555년이고 목적은 왜구 제압인데, 선지는 이를 "임진왜란 때 일본의 수군을 격파하기 위해 처음 개발되었다"로 옮겨놓는다. 1592년 임진왜란과 1555년 개발 시기의 37년 차이를 놓치면 함정에 빠지지만, 지문 첫 문장에 연도가 명시되어 있으므로 확인만 하면 배제된다.
③은 한 단계 더 정교하다. "격군은 최소 125명 이상이었다"는 서술에서 교란의 핵심은 '격군'이라는 단어 하나에 있다. 지문은 "사수와 격군을 합친 숫자가 판옥선의 125명보다 많다"고 쓰고 있다. 125명은 사수와 격군의 합산이지, 격군 단독의 수가 아니다. 이 구분은 문장의 후반부에 묻혀 있어 빠르게 읽으면 놓치기 쉽다. '부분'과 '전체'의 바꿔치기라는 점에서 ①의 '길이'와 '높이' 교환과 구조는 같지만, 감지 난이도는 ③이 높다.
⑤는 앞선 세 오답과 결이 다르다. 속성 하나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전체를 역전시킨다. 지문에 따르면 주요 해전에서 거북선은 3척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전부 판옥선이었다. 판옥선이 주력이고 거북선은 극소수의 보조 전력이다. 그런데 ⑤는 "판옥선은 … 거북선으로 대체되었다"고 적음으로써 주력과 보조의 관계를 통째로 뒤집는다. 이 역전은 ①~④의 세부 대조 작업을 거치며 누적된 인지 피로 위에 놓여 있다. 네 개의 선지를 하나하나 지문과 대조한 뒤 마지막 선지에 도달한 수험생은 정밀 확인의 관성이 떨어진 상태이며, 거북선이 유명하다는 배경 상식이 "대체"라는 서술에 그럴듯한 무게를 실어줄 수 있다.
정답이 머뭇거리게 만드는 이유
이 문항에서 정오를 가르는 진짜 경계선은 오답의 교란이 아니라, 정답 선지가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불확실성의 어감에 있다. ②는 "적군의 승선전투전술 활용을 어렵게 하여 조선 수군이 전투를 수행하는 데 유리하였을 것이다"라고 쓴다. "유리하였을 것이다"라는 추정형 종결은 수험생에게 '이것은 지문에 명시된 사실인가, 아니면 근거 없는 추론인가'를 묻는 순간을 만든다.
그런데 지문 3문단을 다시 보면, "일본군이 그들의 장기인 승선전투전술을 활용하기 어렵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고 단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선지 ②가 말하는 내용은 지문에 이미 명시되어 있으며, 종결어미만 추정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지문이 "효과가 있었다"고 확언한 것을 "유리하였을 것이다"로 한 톤 낮춰 쓴 것은, 지문 부합 진술을 마치 외삽적 추론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치이다.
이 설계의 효과는 미묘하다. 오답들은 구체적 수치와 단정적 어조로 무장하고 있어 '사실처럼' 보인다. 반면 정답은 추정형 종결로 인해 '불확실해' 보인다. 구체성과 확신이 오답 쪽에, 조심스러움이 정답 쪽에 배치된 이 역전이 문항의 심장이다.
세부 대조를 넘어서는 읽기
이 문항이 남기는 교훈은 "꼼꼼히 읽자"가 아니다. 꼼꼼히 읽는 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항이 요구하는 것은 두 단계의 점검이다.
첫째, 선지가 지문의 속성을 인용할 때 그 속성의 단위·범위·소속이 보존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길이'인지 '높이'인지, '합산'인지 '부분'인지, '주력'인지 '대체'인지. 이 점검은 속성 자체가 아니라 속성이 지문에서 어떤 수식어·한정어와 결합되어 있는지를 보는 작업이다.
둘째, 선지의 확신도와 정답 가능성을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다. 단정적으로 쓰인 선지가 정답일 확률이 더 높다는 직관은, 이 문항에서처럼 정답이 의도적으로 추정형 어미를 취한 경우에 오작동한다. 선지의 어조가 아니라 선지의 내용이 지문에 근거를 갖는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의 대상에 속성이 밀집된 정보형 지문을 만날 때, 각 속성을 분리하여 고유한 한정 조건(단위, 범위, 구성요소, 시기)과 함께 기억하는 습관이 이런 유형의 교란에 대한 가장 실질적인 방어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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