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PSAT 언어논리 4
천지만물은 한 뿌리에서 나온 형제이므로, 생명을 해쳐 자신을 기르는 것은 천지의 뜻에 어긋난다
Photo · Arbbrief Editorial낚싯대 앞에 선 만물일체
천지가 만물의 부모이고, 만물이 곧 천지의 자식이라면, 살생이란 형제를 죽이는 일이다. 이 비유는 서경에서 출발하여 유교의 인(仁)과 불교의 만물일체론에 이르기까지, 지문 첫째 단락 전체를 관통하며 하나의 거대한 결론을 향해 치달린다. "사람과 만물이 서로 죽이는 것이 어찌 천지의 뜻이겠는가?" 수사적 질문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살생은 천지의 뜻이 아니다.
이 문항이 시험하는 것은 그 결론의 이해가 아니다. 시험하는 것은 그 결론이 뒤집히는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이다. 빈칸추론 문항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제로 요구되는 인지 작업은 논증의 방향 전환을 읽고, 전환 이후의 근거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추적하는 일이다.
웅변과 전환
지문의 설계를 보자. 첫째 단락은 살생 부정의 논증을 비유 위에 비유를 쌓아 올려 구축한다. 천지는 만물의 부모, 만물은 천지의 자식, 부모는 어리석은 자식도 해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식끼리 죽이는 것은 부모의 마음이 아니다. 이 비유 사슬은 수사적으로 강력하다. 읽는 이를 자연스럽게 '살생은 잘못이다'라는 정서적 동의 안으로 끌어들인다. 단락 말미에 유교의 '인'과 불교의 '만물일체'가 합류하면서, 이 동의는 사상적 권위까지 등에 업게 된다.
여기까지만 읽은 수험생의 머릿속에는 "유교와 불교는 살생을 부정한다"는 명제가 기정사실처럼 자리 잡는다. 이것이 출제자가 의도한 첫 번째 효과다. 독자의 인지적 관성을 한 방향으로 몰아놓는 것.
둘째 단락은 "그렇지만"이라는 단 세 글자로 방향을 꺾는다. 이 역접 이후에 놓이는 문장이 결정적이다. "실천하여 행하는 것이 그 이상과 같아야 비로소 인의 도를 온전히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장은 잠정적 전제로서, 이후에 제시될 사례를 어떤 틀 안에서 읽어야 하는지를 미리 지정한다. 이상이 아무리 고원해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온전히 다했다"고 할 수 없다. 결론의 방향은 이미 여기서 잠긴다.
공자의 낚시, 맹자의 부엌
역접 이후 등장하는 두 사례를 살펴보자.
공자는 그물질은 하지 않았으나 낚시질은 했다. 잠든 새는 쏘지 않았으나 나는 새는 맞추었다. 이 사례는 완전한 살생도 아니고 완전한 금지도 아니다.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는 것처럼 읽히지만, 뒤집어 보면 낚시질과 사냥을 실제로 행했다는 사실이 남는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덜 잔인한 방식으로 했다"는 것이다.
맹자의 사례는 더 미묘하다. "군자가 푸줏간을 멀리하는 것은 가축이 죽으면서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곧이곧대로 읽으면 군자는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는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한 겹만 벗기면 구조가 달라진다. 군자가 멀리하는 것은 푸줏간이지 고기가 아니다. 도살의 현장을 피할 뿐, 고기를 먹는 행위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측은지심은 있되, 그 측은지심이 식탁 위의 실천까지 관철되지는 않는 것이다.
두 사례가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부분적 절제와 전면적 금지 사이의 간극이다. 첫째 단락이 세운 이상은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는 전면적 살생 부정이었다. 그런데 유교의 대표적 성인들조차 그 이상을 온전히 실천하지는 못했다. "이것으로 보면"이라는 접속구는 이 간극으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라는 지시이다.
하나의 분기점
이 문항에서 정답과 오답을 가르는 경계선은 한 가지로 요약된다. "그렇지만" 이후의 사례가 이상의 성공적 실천을 보여주는가, 아니면 이상과 실천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가.
역접의 방향을 정확히 읽은 수험생은 괴리 쪽으로 즉시 선회할 수 있다. 그러나 첫째 단락의 수사적 관성에 사로잡힌 수험생은 공자와 맹자의 사례마저 '살생 부정의 실천'으로 읽어버릴 위험이 있다. 공자가 그물질을 삼간 것, 맹자가 도살 현장의 잔혹함에 마음 아파한 것만을 부각하면, "유교는 이상을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결론으로 미끄러진다. 이 미끄러짐이 문항이 설계한 함정의 핵심이다.
선지가 펼치는 풍경
가장 정교한 유혹은 공자와 맹자의 행위를 동물에 대한 온전한 배려로 격상시키는 방향에서 온다. "동물마저 측은히 여기는 대상에 포함하여 인간처럼 대하였다"는 진술이 그것이다. 이 선지는 맹자의 측은지심 일화를 근거로 삼아 그럴듯한 외양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맹자의 군자는 도살 현장을 피했을 뿐 고기를 먹지 않은 것이 아니며, 공자는 실제로 낚시와 사냥을 행했다. "인간처럼 대하였다"는 행위의 속성을 바꿔치기한 표현이다.
유사하게, 인의 도를 "철두철미하게 잘 실천하고 있다"고 결론짓는 방향의 선지도 있다. 이 선지는 지문의 핵심 용어인 '인의 도', '천지만물', '가족'을 정확히 가져오면서도, 둘째 단락의 역접이 열어놓은 괴리를 정면으로 무시한다. 논증의 어휘는 충실히 재현하되 논증의 방향은 뒤집어놓은 셈이다.
정답은 이상과 실천의 괴리를 가장 정직하게 포착한 진술이다. "인의 도가 지향하는 이상을 실천하는 데 철저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 선지는 공자의 낚시질이나 맹자의 푸줏간 같은 구체적 사례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이상'과 '실천'이라는 추상적 틀로 괴리를 표현한다. 바로 그 추상성 때문에 구체적 사례와의 대응이 즉각적이지 않아 보이고, 수험생은 더 "구체적으로 맞는 것 같은" 다른 선지에 끌리기 쉽다. 그러나 이 추상성이야말로 둘째 단락의 전제("실천이 이상과 같아야 비로소…")가 요구하는 결론의 정확한 거울이다.
빈칸의 문법
이 문항이 남기는 실천적 교훈은 빈칸추론에서의 읽기 순서에 관한 것이다. 빈칸 앞의 접속 표현("이것으로 보면", "따라서", "그렇다면")은 결론의 방향을 지정하는 나침반이다. 이 나침반을 읽기 전에 선지부터 훑으면, 지문의 수사적 관성이 선지 선택을 지배한다. 순서를 바꿔야 한다. 빈칸 직전의 접속구가 가리키는 방향을 먼저 확정하고, 그 방향과 일치하는 선지만을 후보군으로 좁힌 뒤 세부를 검증하는 것이다. 특히 역접("그렇지만", "그러나", "하지만") 이후에 빈칸이 놓인 경우, 결론의 방향은 역접 이전 단락의 주장과 반대쪽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문항에서라면, 첫째 단락이 "살생 부정의 이상"을 세웠으므로, 역접 이후의 결론은 "그 이상이 관철되지 않았다"는 쪽을 향한다. 이 방향 판단 하나만으로 선지의 절반 이상이 소거된다.
역접은 글의 장식이 아니다. 논증의 관절이다. 그 관절이 꺾이는 각도를 정확히 읽는 것이 빈칸추론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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