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LEET 언어이해 22~24
국가의 명령에 대한 복종과 개인 양심의 저항 사이에서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철학적 긴장
Photo · Arbbrief Editorial누구의 동기인가, 누구의 모순인가
하나의 텍스트 안에서 한 인물이 스스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그 모순을 해소할 열쇠를 어디서 찾는가. 글을 쓴 사람의 의도에서인가, 글 속 인물의 전략에서인가, 아니면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의 정밀도에서인가. 2025학년도 언어이해 22~24번 세트가 놓는 시험대는 표면적으로 플라톤의 두 작품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세트가 실제로 변별하는 능력은 그보다 한층 근본적인 것으로, "어떤 주장이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추적하는 정밀성이다. 소크라테스의 모순이냐, 플라톤의 전략이냐, 크리톤의 한계냐, 개념 구분의 부재냐. 다섯 학자가 같은 텍스트 위에 서로 다른 진단을 내릴 때, 수험생에게 요구되는 것은 철학사적 소양이 아니라, 각 진단이 겨냥하는 귀속의 대상을 정확히 분리해내는 독해의 외과적 기술이다.
다섯 개의 렌즈, 하나의 균열
이 지문은 요약될 수 있는 글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요약하는 순간 이 글이 수험생에게 요구하는 것의 본질이 사라진다. 지문의 설계를 이해하려면 그 건축을 들여다봐야 한다.
도입부 두 단락은 균열을 만든다. 「변론」의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철학을 금하면 죽음을 감수하고서라도 불복하겠다고 선언한다. 「크리톤」의 소크라테스는 판결이 부당하더라도 국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논증한다. 두 텍스트를 나란히 놓으면, 한 인물이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한 것처럼 읽힌다. 지문은 이 긴장을 독자에게 넘기지 않는다. 두 번째 단락 끝에서 "만약 국가의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권위주의적 주장을 「크리톤」의 소크라테스가 하는 것이라면"이라는 가정절을 배치함으로써, 모순은 사실이 아니라 조건부 가능성으로 틀 지어진다. 이 가정절의 존재가 전체 지문의 방향타다. 지문은 "소크라테스가 모순된다"를 주장하지 않는다. "모순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를 전제로 깔고, 그 여지를 다섯 학자가 각기 다른 지점에서 해소하거나 확인하는 구조를 펼친다.
셋째 단락이 균열을 한 겹 더 깊이 벌린다. 「크리톤」 자체 내부에도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단절이 있다는 것이다. 전반부에서 소크라테스가 자기 이름으로 세운 원칙들이, 후반부에서는 의인화된 아테네 법률의 입을 빌려 진술된다. 이 형식상의 변화가 내용상의 변화를 수반하는가. 지문은 이 질문을 열어두되 답하지 않는다. 다섯 학자의 해석이 시작되는 것은 이 이중의 균열 위에서다.
여기서 지문의 건축적 핵심이 드러난다. 하워드 진, 그로트, 개리 영, 앨런, 유벤은 단순히 "같은 문제에 다른 답을 내놓는" 병렬적 견해가 아니다. 이들은 모순의 소재지를 서로 다른 층위에 배치한다. 하워드 진은 모순을 액면 그대로 인정하고, 한쪽(「변론」)을 편든다. 그로트는 모순의 원인을 텍스트 바깥의 저자, 즉 플라톤의 변호 전략에서 찾는다. 개리 영은 텍스트 안의 화자인 소크라테스가 대화 상대의 수준에 맞춰 논증을 조절한 결과라고 본다. 앨런은 모순 자체가 허상이라고 주장하며, 핵심 개념의 구별이 부재할 때만 모순으로 보일 뿐이라고 논증한다. 유벤은 겉보기 복종이 실은 더 깊은 차원의 저항이라고 읽는다.
이 다섯 해석을 관통하는 분류 원리가 하나 있다. 모순의 책임을 누구에게(혹은 무엇에게) 돌리는가. 텍스트의 모순을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의 이항 대립이 아니라, 모순을 인정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그 모순이 발생한 지점의 귀속이 다르고, 모순을 부정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소의 경로가 다르다. 지문은 이 귀속의 차이를 기술할 뿐 판정하지 않는다. 판정은 문항의 몫이다.
귀속의 정밀도
이 세트의 세 문항은 겉으로 보면 정보 확인, 해석 평가, 사례 적용이라는 서로 다른 인지 과제를 요구하는 것처럼 배열되어 있다. 그러나 셋 모두가 궁극적으로 시험하는 것은 하나다. 어떤 행위, 어떤 동기, 어떤 판단이 정확히 누구의 것인가를 오차 없이 식별하는 능력. 이것을 "귀속의 정밀도"라 부를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동기인가 플라톤의 동기인가, 소크라테스가 법률에게 말하는 것인가 법률의 입을 빌려 크리톤에게 말하는 것인가, 갑의 동기를 언급하는 것인가 플라톤의 동기를 언급하는 것인가. 이 세트에서 정답과 오답의 거리는 극단적으로 좁다. 한 어절이 가리키는 방향을 잘못 읽는 것만으로 판단이 전복된다.
방향이 뒤집힌 한 문장
22번은 "윗글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을 고르는, 언뜻 단순해 보이는 문항이다. 그러나 이 문항의 진짜 과제는 지문의 서술을 선지가 얼마나 정밀하게 옮겼는가를 판별하는 데 있다. 대부분의 선지는 지문 안에 직접적인 근거 문장을 갖고 있어서, 읽는 순간 거의 기계적으로 참·거짓이 판정된다. 가령 "소크라테스의 작품 내 일관성에 대한 논란은 「변론」에 한정된다"는 선지는, 지문 셋째 단락의 "일관성의 문제는 「크리톤」 내부에 대해서도 제기될 수 있다"와 대조하면 즉시 기각된다. 복종의 근거가 "법률의 구체적 내용"에 있다는 선지 역시, "법률의 내용이 아니라 판결이 부당함을 뜻한다"는 명시적 부정과 충돌한다.
이 문항에서 가장 정교한 함정은 ②에 놓여 있다. "「크리톤」의 후반부는 소크라테스가 의인화된 존재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지문에는 분명 의인화된 아테네 법률이 등장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그 등장의 주체다. 여기까지만 기억하는 수험생에게 ②는 자연스럽게 참으로 읽힌다. 그러나 지문의 원문을 다시 보면, 소크라테스는 의인화된 법률을 "등장시켜 그 입을 빌려" 탈옥 반대 논증을 이어간다. 말의 방향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소크라테스가 법률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법률의 목소리를 빌려 크리톤에게 말하는 것이다. 행위의 화살표가 180도 뒤집혀 있다. 이 뒤집힘을 감지하지 못하면, ②를 정답으로 택하게 된다.
정답인 ⑤는 "국가의 권위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태도가 비일관적으로 보인다는 것에서 기인한다"로 서술되어 있는데, 이것은 지문의 "상치된 주장을 하는 셈이다"를 한 단계 추상화한 재서술이다. "상치"를 "비일관적"으로, 작품별 서술을 "국가의 권위에 대한 태도"라는 상위 범주로 올린 것이다. 정답이 오히려 한 겹의 추론을 요구하고, 매력적인 오답이 거의 직접 인용처럼 보이는 구조. 이 배치는 의도적이다.
같은 추측, 다른 대우
23번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읽기를 요구한다. 다섯 학자의 해석 각각에 대해 "이 조건이 성립하면 이 해석은 이렇게 된다"는 가정법적 추론을 수행해야 하며, 그중에서 "적절하지 않은" 평가를 골라내야 한다. 대부분의 선지는 각 학자 해석의 핵심 전제를 정확히 짚어내고, 그 전제가 무너질 경우 해석이 약화된다는 논리적으로 타당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앨런의 해석이 "부정의를 저지르는 것"과 "부정의를 감수하는 것"의 구별 위에 서 있으므로, 이 구별을 무의미하다고 보는 사람에게는 앨런의 논증이 설득력을 잃는다는 평가는 논리적으로 완벽하다.
이 문항의 정답은, 그로트와 유벤을 대비하는 선지에 있다. "그로트의 해석과 달리 유벤의 해석은 새로운 근거가 추가 제시되지 않으면 단지 추측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비판될 수 있겠군." 이 문장의 구조를 분해하면, "그로트의 해석과 달리"라는 전제절이 먼저 오고, 유벤의 해석만이 추측 기반이라는 결론이 뒤따른다. 그런데 지문으로 돌아가 보면, 그로트의 해석 역시 플라톤이 왜 「크리톤」을 썼는가에 대한 심리적 동기 추측에 기반한다. "플라톤은 … 부정적 인상을 불식시키고자 했고, 바로 여기서 모순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불식시키고자 했고"는 텍스트 안에 명시된 사실이 아니라, 그로트가 재구성한 플라톤의 의도다. 유벤이 소크라테스의 사형 수용 이면에 도덕적 입증의 동기를 읽어내는 것과 구조적으로 동일한 작업이다.
이 선지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로트의 해석과 달리"라는 대비 구문이 만들어내는 인지적 착시에 있다. 대비 구문은 암묵적으로 전항과 후항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전제를 독자에게 밀어 넣는다. "A와 달리 B는 추측이다"라고 쓰면, A는 추측이 아닌 것처럼 읽히게 된다. 그러나 지문을 정밀하게 대조하면, 두 해석 모두 동기 추측이라는 동일한 방법론적 기반 위에 있다. 차이는 추측의 대상이 텍스트 외부 인물(플라톤)이냐 내부 인물(소크라테스)이냐에 있을 뿐, "추측이냐 아니냐"라는 이 선지의 대비축은 허위다.
⑤가 이 판단을 확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로트는 텍스트 외부 인물의 동기에, 개리 영은 텍스트 내부 인물의 동기에 천착하여 각각 텍스트상의 모순을 설명할 방법을 제시하고 있군." 이 선지는 그로트와 개리 영을 동기 대상의 내/외 층위로 정확히 분류한다. ⑤가 적절한 평가로 확정되면, 그로트의 해석 역시 동기 추측에 기반한다는 사실이 부수적으로 확인된다. 두 선지를 교차 조회할 때 비로소 정답의 윤곽이 선명해지는 구조다.
소로의 그림자 위에서
24번은 보기로 제시된 사례를 다섯 학자 각각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문항이다. X국의 부당한 전쟁, 특별세 납부 거부, 구류 감수, 친구의 변호. 이 사례는 소로의 시민불복종을 떠올리게 하지만, 지문 바깥의 지식은 불필요하다. 필요한 것은 오직 지문 안의 다섯 해석 틀을 보기의 인물들에게 정확히 대입하는 것이다.
이 문항에서 가장 거칠게 방향을 뒤트는 선지는 ①이다. "하워드 진은, 특별세 납부 대신 구류를 선택한 갑의 결정을 국가에 대한 저항 정신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하워드 진은 지문에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해 징집을 거부한 청년들을 옹호한 인물로 소개된다. 그가 비판하는 것은 부당한 권력에 대한 순응이지, 불복종 그 자체가 아니다. 갑은 부정의한 전쟁에 반대하여 납세를 거부했고, 그 결과 구류라는 제재를 감수했다. 이것은 하워드 진이 옹호하는 바로 그 행위, 즉 부당한 국가 명령에 대한 불복종의 전형이다. ①은 "저항 정신을 포기한 것"이라는 평가를 하워드 진에게 귀속시키지만, 이 귀속은 지문 속 하워드 진의 입장과 정반대다.
②는 더 미세한 함정을 품고 있다. "소크라테스를 변호하기 위해 소크라테스의 동기를 언급하는 그로트에 비견된다." 을은 갑을 변호하기 위해 갑의 동기를 언급했으니, 누군가를 변호하기 위해 그 사람의 동기를 말한다는 구조적 유사성은 성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로트가 언급하는 동기는 소크라테스의 동기가 아니다. 그로트는 플라톤의 저술 동기를 통해 텍스트의 모순을 설명한다. 변호의 대상은 소크라테스이지만, 동기의 소유자는 플라톤이다. "소크라테스의 동기"와 "플라톤의 동기"라는 한 어절의 차이가 선지의 참·거짓을 결정한다. 22번의 ②에서 행위의 방향이 뒤집혔듯, 여기서는 동기의 귀속 주체가 바뀌었다.
정답인 ⑤에 도달하려면, 유벤의 해석을 갑의 상황에 연결하는 추론을 스스로 구성해야 한다. 유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가 탈옥하지 않고 사형을 감내한 것은, 부정의를 저지르기보다 당하는 편이 낫다는 자기 가르침을 행위로 입증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오히려 부당한 권력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점하는 저항이 된다. 갑은 특별세를 거부한 뒤 구류라는 더 큰 경제적 손해를 순순히 감수했다. 이 감수는 갑의 불복종이 경제적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확신에 기반한 것임을 보여준다. "불복종 행위의 도덕적 순수함"이라는 선지의 표현은 지문에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유벤의 논리를 갑의 사례에 적용하면 정확히 이 결론에 이른다.
오답이 작동하는 공통 문법
이 세트의 세 문항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오답 설계의 문법을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행위나 속성의 귀속 방향을 한 단계 틀어놓는 방식이다. 22번 ②에서 "법률에게 말을 건넨다"와 "법률의 입을 빌려 말한다"의 차이, 24번 ②에서 "소크라테스의 동기"와 "플라톤의 동기"의 차이가 이 유형에 해당한다. 이런 선지는 관련된 요소들(소크라테스, 법률, 크리톤, 플라톤)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서 언뜻 정확해 보인다. 그러나 요소 사이의 관계, 특히 "누가 누구에게", "누구의 것을 누구에게"라는 방향이 뒤바뀌어 있다. 이것은 내용의 왜곡이 아니라 관계의 왜곡이다. 등장하는 명사가 모두 맞더라도, 명사를 잇는 동사와 조사의 방향이 한번 틀어지면 전체 진술이 거짓이 된다.
둘째, 대비 구문이 허위의 비대칭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23번 ④에서 "그로트의 해석과 달리"라는 구문은, 그로트와 유벤이 공유하는 속성(동기 추측)을 마치 유벤에게만 있는 속성인 것처럼 프레이밍한다. 대비 구문("A와 달리 B는 ~하다")은 자동적으로 A에게 반대 속성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으며, 독자가 이를 의식적으로 검증하지 않으면 그 암묵적 전제를 수용하게 된다. 이 문법은 언어이해 전반에서 반복되는 설계 패턴으로, "A와 달리"의 A가 실제로 B와 다른 점에서 다른 것인지, 아니면 동일한 속성을 공유하는데 대비 구문이 차이를 조작하고 있는 것인지를 매번 점검해야 한다.
조사 하나의 거리
이 세트가 남기는 교훈은 명확하고 실행 가능한 형태로 전환된다. 견해 비교형 지문을 읽을 때, 각 학자의 주장을 "누가 / 무엇의 동기를 / 어떤 목적으로 / 어떤 층위에서 다루는가"라는 네 항의 격자로 분해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이 격자의 한 칸이라도 비어 있으면, 선지가 그 빈 칸에 오류를 삽입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선지를 읽을 때 주어와 목적어의 관계를 화살표로 그려보는 것이 유효하다. "을이 갑의 동기를 언급한다"와 "그로트가 소크라테스의 동기를 언급한다"를 각각 을→갑, 그로트→소크라테스로 표기한 뒤, 지문의 실제 구조(그로트→플라톤)와 대조한다. 이 대조에 걸리는 시간은 수 초에 불과하지만, 이 수 초가 정오를 가른다. 견해가 많아질수록, 각 견해 안의 행위자·대상·방향을 혼동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이 세트는 그 혼동의 지점을 정확히 겨냥하여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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