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Arbbrief Editorial동의어가 아닌 것들에 관하여
2026학년도 언어이해 22~24번 세트의 지문은 표면적으로 도덕철학의 오래된 문제, 곧 행위와 무위(不爲)의 비대칭을 다룬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과 죽게 내버려 두는 것 사이에는 도덕적 무게의 차이가 있다는 직관, 그리고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을 때에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원칙. 여기까지는 윤리학 입문서의 첫 장에 나올 법한 소재다. 그러나 이 세트가 실제로 시험하는 것은 철학적 논쟁 그 자체가 아니다. 시험이 겨냥하는 지점은 훨씬 좁고, 그래서 훨씬 어렵다. 일상어에서 거의 같은 뜻으로 통용되는 두 표현이 논증의 세계에서는 완전히 다른 무게를 지닌다는 것, 그리고 그 차이를 포착하지 못하면 논변 전체의 구조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이 세트의 진짜 주제는 언어의 미세한 결에 대한 감수성이다.
두 겹의 부정문이 만드는 건축
지문은 일곱 개 단락에 걸쳐 하나의 논쟁을 층층이 쌓는다. 첫째 층은 상식의 지대다. 무위는 행위보다 덜 비난받고,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을 때에만 책임이 성립한다. 둘째 층에서 이 상식은 곧바로 균열을 일으킨다. 사례 1(아이를 밀어 넣어 죽인 자)과 사례 2(빠진 아이를 구하지 않은 자)는 둘 다 달리 행동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동일한 조건 아래 놓인다. 그런데 전자에게는 책임이 부과되고 후자에게는 부과되지 않는다. 대안 가능성이라는 변수가 동일한데 결과가 다르다면, 차이를 만드는 진짜 변수는 대안 가능성이 아니라 행위와 무위라는 행동의 성격 자체인 셈이다. 이것이 '비대칭성 논제'다.
셋째 층에서 비판자들이 등장한다. 사례 2를 약간 변형한 사례 3을 제시하면서, 무위의 경우에도 행위자의 결심이 결과에 연결될 수 있음을 보인다. 악어가 아니라 신경과학자가 방해 장치인 사례 3에서는, 내가 구하기로 결심했더라면 (신경과학자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구하려는 시도 자체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심이 결과에 닿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결심에 책임이 있고 따라서 아이의 죽음에도 책임이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비대칭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넷째 층이 이 글의 정점이다. 사토리오는 비판자들의 논변을 네 개의 전제로 정리한 뒤, 그 가운데 하나를 정면으로 공격한다. "아이를 구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 아이의 죽음의 원인이다"라는 전제가 틀렸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아이가 죽은 진짜 원인은 내가 구하지 '않기로 결심해서'가 아니라 구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아서'다. 지문은 이 대목에서 독자에게 섬뜩할 정도로 가느다란 구분선을 긋는다. "구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은 적극적 의지의 산물이다. 반면 "구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은 것"은 어떤 결심도 내리지 않은 상태, 고민만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성립한다. 전자는 마음의 행위이고, 후자는 마음의 무위다.
지문의 설계자가 이 구분을 논증의 마지막 층에 배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자가 앞선 네 개 층(상식, 균열, 비판, 재비판)을 통과하면서 점점 더 미세한 구분을 요구받도록, 난이도의 나사를 한 바퀴씩 조이는 구조다. 그리고 이 마지막 구분이 세 문항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판단 지점을 형성한다.
의지의 존재와 부재를 가르는 한 줄
이 세트의 세 문항은 겉으로는 각각 다른 것을 묻는 것처럼 보인다. 내용 일치, 사례 비교, 반론 식별. 그러나 세 문항이 공통적으로 시험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차이를 만드는 진짜 변수가 무엇인지 식별하는 능력'이다. 사례 1과 사례 2의 책임 차이를 만드는 변수는 대안 가능성이 아니라 행위/무위의 성격이고, 사토리오의 논변에서 공방을 가르는 변수는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과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은 것"의 구분이다. 수험생이 이 구분을 장악하고 있으면 세 문항 모두에서 정확한 판단 경로가 열린다. 장악하지 못하면 세 문항 모두에서 가장 정교한 오답에 끌려간다.
22번: "덜"이라는 한 글자의 무게
22번의 인지적 과제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지만, 그 단순함 안에 선별의 날카로움이 숨어 있다. 이 문항은 지문의 핵심 개념들(행위/무위, 대안 가능성, 비대칭성 논제, 프랭크퍼트 사례의 목적)을 정확하게 파악했는지 확인한다. 정답에 도달하려면 지문 셋째 단락에서 프랭크퍼트 사례가 보여주는 것, 곧 달리 행동할 수 없었는데도 도덕적 책임이 부과되는 상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짚어내면 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오히려 오답들의 설계다. 가장 매력적인 오답 하나는 "대안 가능성의 원칙과 달리 비대칭성 논제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선지인데, 이것은 두 개념 각각에 부여된 속성("상식적")의 귀속을 뒤바꿔 놓은 것이다. 대안 가능성의 원칙이 상식적이라고 지문이 명시하고 있음에도, "~과 달리"라는 대비 구문이 독자의 시선을 비대칭성 논제 쪽으로 미끄러지게 만든다. 또 하나의 오답은 지문 첫 문장의 "덜 비난받는다"를 "비난받지 않는다"로 바꿔 놓았는데, 한 글자("덜")의 삭제가 의미를 정도 차이에서 절대 부정으로 전환시킨다. 이런 최소 단위의 변조를 감지하는 것이 22번의 은밀한 시험이다.
23번: 공유된 조건이 차이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논리
23번은 사례 1, 2, 3의 구조적 차이를 정밀하게 비교하는 문항이다. 이 문항에서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함정은 사례 1과 사례 2의 책임 귀속 차이를 "대안 가능성 여부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선지에 있다. 이 선지가 매력적인 이유는 지문 자체가 두 사례를 서술할 때 "대안 가능성이 없어도"(사례 1), "대안 가능성이 없기에"(사례 2)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키워드가 반복 등장하면서, 그것이 마치 두 사례를 가르는 핵심 변수인 것처럼 인지적 착시를 일으킨다.
그러나 정확히 읽으면 두 사례 모두 대안 가능성이 "없다". 같은 값을 공유하는 변수가 차이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A와 B가 모두 키가 170cm인데 "키 차이 때문에 A가 더 무겁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대안 가능성의 유무가 아니라 행위와 무위라는 성격의 차이, 그리고 그 성격에 따라 비대칭적으로 작동하는 책임 귀속의 원리다. 이 선지를 거부하려면, 지문에서 반복되는 키워드의 빈도에 끌리지 않고 그 키워드가 실제로 가리키는 값(두 사례 모두 "없음")을 확인해야 한다.
나머지 선지들 가운데 사례 1과 사례 3에서 신경과학자가 실제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판단은 반사실적 조건문("~했다면 ~했을 것이다")의 구조를 읽는 능력을 요구하고, 사례 3이 사례 2와 달리 결심과 결과의 연결을 보이려 한다는 판단은 두 사례의 도입 맥락을 비교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이들은 모두 적절한 이해에 해당하며, 부적절한 이해를 찾는 문항에서 걸러져야 할 대상이 아니다.
24번: 동조가 반론의 외양을 입을 때
24번은 이 세트에서 가장 높은 인지적 부하를 요구하는 문항이다. 사토리오의 논변 구조(전제의 정리, 특정 전제에 대한 비판, 수정된 논변에서의 새로운 쟁점)를 먼저 머릿속에 지도처럼 펼쳐야 하고, 그 위에 보기의 네 가지 진술을 하나씩 올려놓으며 각각이 사토리오를 공격하는 방향인지 지지하는 방향인지를 판별해야 한다.
핵심적인 어려움은 동조와 반론의 경계에 있다. 보기의 진술 가운데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은 것에 책임이 없다"는 주장은 얼핏 사토리오를 비판하는 것처럼 들린다. 부정적이고 단정적인 어조가 '반박'의 인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토리오 자신이 주장하는 바가 바로 심적 무위(결심의 부재)에 대한 책임 귀속은 증명이 필요한 논란거리라는 것이므로, "책임이 없다"는 진술은 사토리오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결심하지 않은 것에서는 아이의 죽음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진술도 비대칭성에 반대하는 논변을 약화시키는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비대칭성을 옹호하는 사토리오에게 우호적이다.
진정한 반론은 사토리오가 세운 구분의 벽 자체를 허무는 방향에서 온다.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은 것"이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을 단초로 삼아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은, 사토리오가 "전혀 다른 심적 상태"라고 분리한 둘 사이에 인과적 다리를 놓는다. 또한 특정 맥락(가령 돌봄 의무가 있는 부모)에서는 결심하지 않은 것이 곧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된다는 주장은, 두 상태 사이의 절대적 경계를 반례로 무너뜨린다. 이 두 진술만이 사토리오의 핵심 전제("둘은 전혀 다르다")를 직접 겨냥하는 공격이다.
이 문항을 풀기 위한 판단 경로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먼저 사토리오의 핵심 주장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심적 행위와 심적 무위는 전혀 다르며, 후자에 대한 책임은 증명이 필요하다). 그다음 각 보기 진술이 이 주장을 강화하는지 약화하는지를 판별한다. 진술의 어조가 부정적이라고 해서 반론인 것은 아니다. 반론인지 여부는 어조가 아니라 논증적 방향, 곧 그 진술이 사토리오의 전제를 지탱하는 쪽인지 허무는 쪽인지에 의해 결정된다.
이 세트를 관통하는 오답의 문법
세 문항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작동하는 오답 설계의 공통 원리가 셋 있다.
첫째, 공유 조건의 차이 변수 위장이다. 두 대상이 동일한 값을 공유하는 조건을, 마치 둘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변수인 것처럼 제시하는 기법이다. 23번의 "대안 가능성 여부 때문"이 전형적인 사례다. 이것은 지문이 특정 키워드를 반복 사용할 때 그 키워드의 빈도가 인과적 중요성으로 오인되는 인지적 편향을 노린다. 방어법은 간결하다. 비교 대상 양쪽에서 해당 변수의 실제 값이 같은지 다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둘째, 논증적 방향과 수사적 어조의 괴리다. 24번에서 동조가 반론처럼 보인 이유는 진술의 부정적 어조("책임이 없다", "예측 불가능하다") 때문이었다. 어떤 주장을 평가할 때 그 주장이 '부정하는 느낌'인지 '긍정하는 느낌'인지로 판단하면, 논증적 방향(실제로 어느 입장을 강화하는가)을 놓치게 된다. 방어법은 평가 대상 학자의 핵심 주장을 먼저 한 문장으로 고정한 뒤, 각 진술이 그 문장의 전제를 공격하는지 지탱하는지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셋째, 유사 표현 사이의 정의적 경계 무시다.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과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은 것"처럼 일상어로는 거의 구별되지 않는 두 표현이 논증 안에서 결정적으로 다른 역할을 수행할 때, 그 차이를 간과하면 논변 전체의 골격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이 세트 고유의 함정이면서 동시에 법학적, 철학적 텍스트 일반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패턴이다. 부정의 위치가 어디에 걸리느냐에 따라 문장의 논리적 구조가 달라진다. "~하지 않기로 결심하다"에서 부정은 행위의 내용에 걸리고,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다"에서 부정은 결심이라는 행위 자체에 걸린다. 전자는 결심이 존재하되 그 방향이 부정이고, 후자는 결심 자체가 부재한다. 이 차이를 놓치면 사토리오의 논변은 물론이고, 그에 대한 반론과 동조의 구별도 함께 사라진다.
가져갈 것
이 세트에서 남기고 싶은 실행 가능한 절차는 두 가지다.
하나는 '차이의 원인을 묻기 전에, 비교 대상이 해당 변수에서 실제로 다른 값을 갖는지부터 확인하라'는 점검 루틴이다. 지문이 A와 B를 비교할 때 특정 키워드가 양쪽에 모두 등장하면, 그 키워드는 차이가 아니라 공통점을 가리킬 가능성이 높다. 차이의 원인은 지문이 명시적으로 반복하는 키워드가 아니라, 오히려 그 키워드 뒤에 숨어 있는 다른 변수(이 세트에서는 행위/무위라는 성격)에 있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부정어가 문장의 어디에 걸리는지를 반드시 확인하라'는 독해 습관이다. "X하지 않기로 결심하다"와 "X하겠다고 결심하지 않다"가 같은 말처럼 들릴 때, 부정어("않/않다")의 통사적 위치를 물리적으로 짚어야 한다. 전자에서 부정은 X라는 행위의 내용을 부정하고, 후자에서 부정은 결심이라는 행위를 부정한다. 이 확인을 생략하면, 일상적 동의어 관계가 논증적 맥락에서 균열을 일으키는 지점을 영영 포착하지 못한다. 법률 조문이든 철학 논증이든, 부정어의 작용역(scope)이 논리적 구조를 가르는 순간은 언어이해 지문에서 거듭 출현한다. 이 세트는 그 순간을 극도로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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